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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챌린지19

좌익(소련)과 우익(미국) 남한 점령군으로 선발된 24군단은 1944년 4월 8일 하지(John Reed Hodge) 중장을 사령관으로 하여 하와이에서 창설된 뒤,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쌓은 전투부대였다. 소련의 빠른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점령군의 신속한 한반도 이동을 최우선 목표로 삼은 미국 정부와 군부는 순전히 한국으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물리적인 이유에서 당시 오키나와에 주둔 중이던 24군단을 남한 점령군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미육군 남조선주둔사령관으로 임명된 하지는 민정(民政) 경험도 한국 관련 지식도 전혀 없는 전형적인 야전 지휘관이었다. 그는 상부의 강한 대소(對蘇) 견제의식을 전달받으면서 미군의 남한 점령 목적은 기본적으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남한을 소련의 전한반도 점령을 막기 위한 보루로.. 2024. 11. 27.
사회복지시설 인권유린 왜 끊어지지 않나 지역토호 비호속에 인권유린 상습범 활개 쳐1998년 7월 16일 새벽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를 비롯한 일군의 인권운동가들이 진상조사를 위해 충남 조치원에 있는 부랑인 수용 사회복지시설을 기습적으로 방문함으로써 그동안 이 시설 안에서 저질러진 인권유린의 실태가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른바 양지마을 사건이다. 한일병원, 정화원, 온달의 집, 자강원, 대전원명학교, 송현원, 양지마을 등 7개나 되는 시설을 운영하는 노재중 씨가 이사장으로 있던 이 시설은 수용자들에 대한 무차별 구타, 강제입소와 감금, 강제노역, 강제 투약 등 복지시설의 일상이 온통 강제적으로 행해지던 비인간적인 노예의 섬이었다. “술 한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천안 역전에서 끌려왔다”는 사람, “역에서 차표 환불문제로 옥신각신하던 끝.. 2024. 11. 26.
'건양'의 뜻을 아시나요? 건양은 을미사변 이후, 김홍집 내각이 태양력 사용을 채택하면서 제정한 연호이다. 1896년 1월 1일부터 1897년 8월 14일 ‘광무(光武)’ 연호가 새로 제정되기까지 사용되었다. 김홍집 내각이 1895년 9월 9일, 태양력 사용을 채택하고, 음력 1895년(개국 504년) 11월 17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896년(개국 505년) 1월 1일로 삼는다는 조칙을 내렸다. 또한 11월 15일에는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올려 재가를 받았다. 태양력 사용을 계기로 종래 사용하던 중국의 연호 대신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한 것이다.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 2024. 11. 24.
재일동포의 기록, 재일 100년 중에서.... 해방전:1905년~1929년1905년09월관부연락선(부산↔시모노세키) 취항11월17일한일협약(제2차・'을사조약') 외교권 박탈12월21일일본, 한국총독부 설치, 초대총감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906년11월05일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 결성1907년06월29일헤이그 특사 사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국제회의에 호소하기 위해 고종황제가 사절단을 파견07월24일한일협약(제3차) 군대 해산, 경찰권 박탈1909년10월26일안중근, 하얼빈역에서 이토우 히로부미 사살 (1910년3월25일 여순=旅順 감옥에서 사형 집행)1910년08월22일'한국병합조약' 체결 조선총독부 설치(8월29일) 초대 총감에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09월30일토지 조사 사업 개시(~1918년12월) 자소작농의 이농 현상, 도일 시작됨19.. 2024.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