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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2

김구를 심문하는 등 이견의 여지가 없는 유명한 친일파 김씨 성을 가진 여자의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김윤정이런 친일파가 있었다니 놀라웠다.전라남도 참여관경기도 참여관충청북도지사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하였는데, 친일파 청산이 안됐던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이 당시 남한의 기득권들이 지금 들고 일어나나부다... 당시의 후손들이...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긴 뒤 영국 유학을 갔다가 그해 귀국했다.태인군 군수를 거쳐 1906년 인천부윤으로 발령받았다. 김구의 《백범일지》에 따르면 1896년 치하포에서의 일본인 살인 사건으로 인천에 압송된 김구가 김윤정에게 심문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손세일은 김윤정의 나이와 유학 시기, 인천부윤 발령 시점을 고려할 때 연대가 맞지 않는다며 이를 김구의 착각으로 보았다. 그러나 김구의 백범일지에.. 2024. 11. 21.
이승만 시대가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의 반복된다고 하죠? 그것도 좋은것보단 악습들... 지금 정권을 보면 이승만 시대가 보여요  이승만 정권과 그 정치적 동맹자인 한민당은 민중이 요구하는 개혁적 조치들을 시행할 생각이나 의지가 없었다.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서는 친일파 정당이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던 한민당 뿐만 아니라 친일 경찰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던 이승만도 강력히 반대했다. 남한 내부 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관련해서는 민심을 얻음으로써 경쟁자인 좌익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아예 배제한 채 오직 경찰력과 물리력으로써 탄압을 통해 와해시키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오직 남한 사회의 안정은 반공국가 건설로써만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를 위한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특히 여순 사건 이후 국가보안법 제정.. 2024.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