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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시대가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의 반복된다고 하죠? 그것도 좋은것보단 악습들... 지금 정권을 보면 이승만 시대가 보여요  이승만 정권과 그 정치적 동맹자인 한민당은 민중이 요구하는 개혁적 조치들을 시행할 생각이나 의지가 없었다.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서는 친일파 정당이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던 한민당 뿐만 아니라 친일 경찰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던 이승만도 강력히 반대했다. 남한 내부 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관련해서는 민심을 얻음으로써 경쟁자인 좌익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아예 배제한 채 오직 경찰력과 물리력으로써 탄압을 통해 와해시키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오직 남한 사회의 안정은 반공국가 건설로써만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를 위한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특히 여순 사건 이후 국가보안법 제정.. 2024. 11. 14.
부산의 문효중 박사와 학생들의 기억(부마민중항쟁) 충무동에 문효중 박사라고 있어요, 그 유명한 부산의 피부 비 그 선생이었던 그 학교다. 이제 그, 저, 그 시험 치고 난 뒤 이제 대학을 기다리면서 그제 치료한다고 이렇게 가는데, 문 박사는 문 박사 대여 오면은 "야,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 지금 어떻게 돼 있어?" 지금 밖에 그때 당시에 이미 난리가 났었어요. 음, 근데 우리는 사복을 입고 다니면 큰일나요. 음, 왜냐하면, 아, 사복 입고 나가면 개군이 내가 군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 내 군복을 항상 입는 거예요, 군복을. 문 박사님, 지금 현재 사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뭐 약간 그런 와중에도 그 문 박사 병원으로 아들이 두드려 맞고 막 피해 들어오면은 그 문효중 박사가 참 의식 있는 그 의사님 있더라고요. 그 충무.. 2024. 11. 13.
월남 이상재...님을 소개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대한제국 시절에는 개화파 정치인으로 미국 공사관 서기관을 지냈다.당시 독립운동사에서 좌우 양 진영 모두에게 인정을 받은 평판이 좋은 독립운동가였다. 일제강점기 시기인 1920년대 초반 '민족 개량주의', '자치론'이 나돌면서 주요 독립 운동 세력들 간 좌우파가 심하게 갈라지고 충돌할 때 유일하게 양쪽에서 모두 믿을 수 있다고 제시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노구를 이끌고 좌우를 중재해 하나로 만든 인물이었는데, 1924년 조선일보를 인수한 이후 사장으로 추대되었던 것과 1927년 좌우익 연합 단체인 신간회 결성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근엄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충청도 출신 특유의 유머감각을 살린 직설화법에 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1850년 10.. 2024. 11. 12.
풀어야 할 사고 :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 1951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군 곡계굴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희생된 사건."전선의 전방지역에서 적의 은신처로 이용되거나 이용될 소지가 있는 모든 거주지 및 건물을 지체 없이 조직적으로 파괴하라. 공중공격, 그리고 포격 소이탄 등 가용한 지상공격 수단들을 동원하라.""화염에 휩싸인 마을과 집들에서 나온 연기가 단양 인근의 계곡들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 사람들은 왜 미군이 적이 없는 마을을 불태우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 집들을 불태워 이미 8천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노인, 장애인, 어린아이들입니다. 이 작전이 가져올 끔찍한 영향과 비교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빈약합니다. 저는 무차별적인 이 소각작전을 선별적 소각으.. 2024. 11. 11.